간략감상


  1. "<항우본기>와 <자객열전>, 결국 이들 실패한 영웅들의 이야기를 통해 사마천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힘은 산을 뽑고 기운은 세상을 덮었다던 항우는 왜 해하 싸움에서 사면초가의 궁지에 몰린 끝에 제 손으로 제 목을 찌르고 말았을까? 자객 형가의 독 묻은 칼 끝에 폭군 진시황이 죽었더라면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이 글을 쓸 때에 사마천의 마음 속에서 휘몰아나가던 상념은 어떤 것이었을까? 정의는 왜 반드시 승리하지 못하는가? 역사를 움직이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정작 붓을 떼고 나서도 사마천은 나비를 놓치고 만 소년의 안타까움을 지녔을 것이다. 나비를 잡으려는 아이의 간절하고 조마조마한 심정이 역사 앞에 선 그의 마음이었다면, 눈앞에서 나비를 놓쳐 부끄럽기도 하고 화도 나는 것은 어느 한 순간 뜻하지 않게 역사가 제 궤도를 벗어나 빗겨갈 때에 느끼는 좌절감과 무력감이었으리라. 과연 역사의 신은 있는가? 역사 속에 정의의 힘은 존재하는가?"


                                                      -- 정민. 비슷한 것은 가짜다. 태학사. p67

  
  실패한 영웅들 이야기를 쓴 사마천도 사마천이고, 그 사마천의 글을 곰곰이 되새기는 연암도 연암이고, 그 연암의 글을 다시금 현대에 되살려 풀이해주는 정민도 정민이다. 그러므로 실패를 두려워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이러다 쓰러지고 실패하고 참담하게 구른다고 누가 알아주느냐고 조급해 할 것 없이, 미래는 모두 기억해 줄 것이다. 우리가 저항하는 모든 것은 의미가 있다.



  2. 왓치맨(Watchmen). Alan Moore| 정지욱 역| 시공사

  그래픽 노블이라는 생소한 혀꼬부라진 양키말 때문에 호기심이 생겨 사 봤다. 이게 20년 전 작품이라고? 거짓말.

  작품의 틀을 구성하는 것은 늙고 지쳐버린 히어로들에 대한 만가다. 가면과 코스튬 뒤에서 악과 대항하여 싸우던 히어로들은 2차 세계대전을 축으로 하여 크게 정체성이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냉전 시대에 와서는 완전히 스스로 와해되고 만다. 그들이 사라져간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한두 가지가 아니다. 드라마나 만화에서처럼 '악은 사라졌다. 정의는 영원하리!'하고 하하하 웃으며 다함께 손을 잡고 아침해가 떠오르는 동쪽 벌판으로 달려가며 눈부시게 디엔드 자막이 흐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현실 속에 들어온 히어로들의 삶은 만만하지 않다. 눈에 보이는 뚜렷한 '악역'의 종말, 냉전에 대항하기 위해 거대체제가 되어버린 시스템의 압박, 시민들의 적개심. 기타등등. 그들이 히어로가 된 동기가 다양하듯, 그들이 몰락해간 과정 또한 다양하다. 세상은 왜 히어로를 필요로 했고, 또 히어로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는가. 본색을 거부하고 가면과 코스튬을 통해 '초인'을 만들어낸 그들의 분열증적 자아와 마찬가지로 세상 또한 분열증을 앓고 있다. 기껏 뒷골목 건달 깡패 몇을 잡는다고 세상에 정의가 서는 건 아닐 것이다. 히어로들은 필사적으로 선과 악을 구별하고 정의내리려 애쓴다. 세상 어딘가에는 분명 악의 근원이 있어서 그걸 파괴하면 반드시 선이 승리하리라고.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는 정부의 용병이 되어 베트남전에서 아이들을 죽이고, 누군가는 자신의 히어로 이미지를 팔아 사업을 하여 사회에 환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이 찾는 절대악은 거대한 이념 히스테리 속에 삼켜져 세상 전체로 편재되고 개인 내부로 내재되고 말았다. 마치 로르샤하 테스트처럼 모호하게. 그리고 어느 한 놈은 세상의 우울증을 고치겠다며 멀쩡하게 미쳐버리고 만다.

  책 속의 컷만화를 보고 자란 이들이 가면과 코스튬을 뒤집어쓰고 현실 속으로 튀어나와 히어로가 되었다, 그들의 현실은 다시 우리에게는 책 속의 컷만화다, 라는 식으로 이야기는 현실 속의 현실을 그린다. 그러나 그들이 늙고 지쳐가며 굴복해버린 현실은 우리의 현실과 그다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통쾌하고 울화가 치밀며 비장하고 또한 슬프기 그지없다. 

  등장인물 중 한명이 보고 있는 만화라는 식으로 소개되는 또다른 책 속의 책인 검은 수송선 이야기도, 책 전체의 리얼리티를 끌어올려주는 텍스트 자료들도 흥미진진.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왓치맨들의 결말은 암담하기 짝이 없으나 검은 수송선 이야기처럼 절망적이지는 않다고 애써 생각한다. 결국 참화 속에서도 사람은 살아남을 것이다.

by 사이암 | 2008/07/05 12:03 | 중년의 취향 | 트랙백 | 덧글(1)

하늘에서와도 같이 땅에서도...


  신부님수녀님들을 지켜드리려고 부랴부랴 다녀왔는데, 도리어 신부님수녀님들이 저희들을 지켜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시국에 어려운 결단,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정말로 인간이 희망입니다.

 

  닭장차로 서울광장을 물샐 틈 없이 조여놨길래 미사고 뭐고 다 틀린 건 아닌가 했는데. 다행히도 한쪽 켠에 길을 터놔서 무사히 광장으로 집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뭐해. 음향차를 경찰이 막아버려서 6시에 예정된 미사가 한시간이 넘도록 시작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시간 반만에 겨우 조달해 온 음향차. 숨이 가쁩니다.


  예정을 훨씬 넘겨 7시 반이나 되어 입장하시는 사제님들.


  질서정연하게 피켓을 들고 연이어 들어오시는 모습에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한때는 성전에 갇힌 종교라고 우스이 여겼습니다. 참여하지 않는 종교가 무슨 소용이 있으랴고 냉소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무거운 발걸음 옮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제님들 행렬에 맨 마지막으로 들어오시던 스님 한 분. 박수갈채가 이어졌습니다.


  차분하고도 정연한 논조의 '위정자를 위한 기도'와 미사가 집전된 후.



  '그리스도의 몸''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되뇌이며 성체를 나누시던 신부님. 죄송합니다. 근본은 카톨릭이나 믿음이 미천하여 아직 세례도 받지 못한 사이비 신자라 성체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평화로운 촛불들. 하늘에서와도 같이 땅에서도 평화롭기를.


  사제님들은 이어서 천막을 치고 단식투쟁을 선언하셨습니다. 모쪼록 건강 해치시지 않기를, 그 마음에 증오 대신 평화 깃들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사제님들 덕분에 오늘도 촛불은 평화로이 행진한 모양입니다.



  기도문 중에도 뼈저리게 새겨들어야 할 문구가 많아서 기억해두려 애썼습니다. 다행히도 성명서 전문이 인터넷에 돌고 있더군요. 마지막으로 첨부할 테니 궁금하신 분들은 읽어보십시오. 몇 구절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돈에 홀려 영혼을 값싸게 팔아넘기는 걸 원하지 않는다""국민이 원하는 건 값싼 소고기 먹는 것보다 자존감을 되찾는 일""친미와 반미, 보수와 진보의 이념갈등으로 왜곡하지 맙시다""촛불집회의 의의는 다름이 아니라 국민을 위로하는 것""오늘 우리는 남쪽으로 갑니다. 이제 이명박 대통령은 필요없습니다. 우리는 국민에게 나아가야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의 하나일 뿐입니다."


  희망은 있을 겁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성명문 전문

by 사이암 | 2008/07/01 03:36 | 멋대로 떠들기! | 트랙백(1) | 덧글(10)

촌철살인


  1. 오늘자 조*일보 헤드라인.

  광화문, 法은 죽었다

  그야말로 촌철살인. 한 마디로 사람을 (복장터져) 죽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제법인걸. -_-


  2. 굳이 하루의 기록을 남기는 것은, 여기저기 날것 그대로 널려있는 누추한 일상을 그러모아 천조각처럼 서툰 솜씨로 매만지고 기워나가는 과정일 것이다. 다른 이의 바느질과 겹치기도 하고 실이 엉키기도 하다보면, 결국은 이어져 있는 거대한 천조각이 된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옷이 되고 이불이 될 것이다.

  
  3. 날씨 좋~타.

by 사이암 | 2008/06/26 11:24 | 멋대로 떠들기! | 트랙백 | 덧글(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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